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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생활

외국에서는 한국사람을 조심하라는 말에 대하여

by 포켓몬 마스터 2020. 3. 10.

나는 종종 듣곤 했다. 

외국에 나가면 가장 경계해야 할 건 말이 안 통하는 외국인이 아니라, 오히려 한국인이라는 말을.

나름 7년 정도의 오랜시간 동안 해외생활을 하고 있고 필리핀, 네덜란드, 일본이라는 문화가 전혀 다른 나라들에 살면서 적응력, 다른 사람을 보는 눈, 경계심 등등이 나도 모르는 새에 날카롭게 다듬어지게 된 것 같다. 지금이야 영어와 일본어를 말할 수 있으니 다른 나라 어디를 가던 어떻게든 살아남을 수 있다는 자신은 있다. 그리고 사실 대화가 통하지 않더라도 바디랭귀지, 표정, 말투, 분위기 등으로 어떻게든 커뮤니케이션은 가능하다는 것도 체험해봐서 잘 알고 있다. 즉, 언어가 통하지 않아서 겪는 문제들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게 해결할 수 있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내가 해외생활을 하면서 겪었던 일들 중 피곤했던 사건들은 대체로 한국인이 관련되어 있는 경우가 많았다. 이것은 오히려 언어가 통한다는 사실이 더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하는 아이러니라고 생각하는데, 해외에서 혼자 생활하고 있는 사람의 불안함, 긴장감 같은 약하고 불안한 감정을 이용하여 한국어로 이것저것 많은 정보를 떠들어대면 누구나 조금이나마 안심하게 되고 이야기에 혹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평소 민감하고 예민한 성격인 탓에 일일이 주위 사람들을 모두 상대하면 정말 피곤해지고 지치는 나의 성격을 스스로 잘 알고 있기에 되도록이면 정말 친해지고 싶은 사람이 아니면 관심을 잘 안주는 편이다. 큰 카테고리로 나눠보자면 친해지고 싶은 사람과 그 외 두 가지로 인간관계를 나누고 있다.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친구일 때의 이야기이고 비즈니스적인 관계나 사회생활은 또 다른 얘기다.

그래서 주위로부터 종종 무심하다는 이야기를 듣는데, 이런 성격임에도 불구하고 꽤나 충격적을 받은 사건들이 몇 번 있었다. 해외에서 오래 살다보면 각 나라 사람들의 특징을 노력해서 살펴보지 않아도 어느정도 느끼게 되는데, 예를 들면 이런 것들이다. 중국인과 러시아인들은 서로 돕고 이끌어주려는 의지가 강하다. 과거 공산주의의 영향인지는 모르겠으나 정말 중국 친구들과 러시아 친구들은 같은 나라 사람들끼리 많이 도움을 주고받는다. 그리고 그들만의 커뮤니티도 정말 크게 만들어져 있다. 중국인 커뮤니티는 거의 네이버 지식인 수준이다. 또한 일본 사람들은 직접 말을 걸기 전까지는 남에게 무신경한 듯 보이지만 말을 걸어 도움을 구하면 정말 감동받을 정도로 도움을 주려고 노력한다. 일본에 살면서 한국인으로서 가지고 있는 일본이라는 나라에 대한 편견과 나쁜 고정관념들이 많이 사라졌다. 그래도 정치는 또 별개의 문제다. 일본의 정치는 정말이지 마음에 안 든다.

그럼 해외에 살면서 느낀 한국인의 특징은 어떠한가에 대해 말해보자면 우선 한국인 특유의 정치질 근성을 빼놓을 수 없을 듯하다. 정말이지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한국인들은 유독 편 가르기가 심한 것 같다. 어느정도 이상의 사람 수가 모이면 항상 그룹들이 만들어지고 대개 그룹간의 심리전이나 정치가 반드시 발생하는 것 같다. 게다가 여자 그룹들에서 더욱 그런 경향이 보인다. 한국 국내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외국에서 홀로서기 하고 있는 한국인들과는 다른 환경에서 지내는 탓에 외국에서 살고있는 한국인들과는 다른 특징을 보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최소한 내가 경험한 외국에서의 한국인들은 편가르기가 심하다. 물론 그 안에서도 좋은 사람들도 있고 서로 도와주려고 하는 착한 사람들도 있지만 반대로 정보를 받기만 하고 다른 한국인을 모두 경쟁자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그리고 그런 이기적인 소수의 사람들로 인해 많은 수의 죄 없는 사람들이 피해를 입는다.

한 번은 대학교에서 한 한국인 여자애가 계속해서 거짓말을 만들어내며 다른 사람을 깎아내리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왜 굳이 다른 사람의 이미지를 저렇게까지 망가뜨리고 다른 사람의 삶을 이슈화 시켜서 가십거리로 만드는지 이해할 수 없었으나, 그런 행동을 하는 그 여자애와 그 말을 듣고는 본인나름의 어떠한 필터 과정도 없이 그대로 가십거리들을 믿어버리는 다른 한국인들을 보며 이슈화 시키는 사람이나 곧이곧대로 믿어버리는 사람이나 결국 같다는 생각(그런 사람들의 수요가 있기에 헛소문을 퍼뜨리는 공급자가 있다)과 그 사람들이 많이 무지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렇게까지 다른 사람의 이미지를 이용하여 자극적인 이야기를 입방아에 계속해서 오르내리게 하지 않으면 살 수가 없는 것일까? 그로 인한 피해자의 억울한 심경은 눈곱만치도 느낄 수 없는 걸까? 만약 그런 인격이라면 그건 마음의 병이나 정신병의 일종이라고 생각했다. 애정결핍일까? 허언증? 뭐가됐든 나쁜 것임에는 틀림없을 터. 그렇게 생각하면 반대로 그런 사람들이 더 불쌍하다.

그래도 대학생일 때야 생물학적인 나이로는 성인이라고 하더라도 아직 정신적으로 미성숙한 사람들도 많고 아직 무지한 사람도 많고 아직 사고력이 깊지 않은 사람도 많기에, 아직 만들어져 가는 상태라고 생각했기에 적어도 이해해보려고 노력은 할 수 있었다. 마음엔 안들지만 그럴수도 있지 라는 식으로 생각은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런 나의 합리화를 뒤엎고 대학생인 아닌 나이를 드실만큼 드신 아줌마의 비슷한 행동을 목격했다. 이건 일본에서 벌어진 일인데. 내가 아르바이트를 구할 때의 일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편 가르기나 정치질의 부류가 아니라 상대방의 입장을 전혀 배려하지 않는 사이코패스적인 성향을 말하는 것이다.)

최근 나는 취직활동으로 인해 도쿄까지 왔다 갔다 교통비를 너무 많이 써서 생각보다 생활비가 금방 줄어들었다. 안 그래도 용돈 받고 사는 떳떳하지 못한 입장에 부모님께 용돈을 더 자주 더 많이 보내달라고도 할 수 없는 노릇. 그래서 학업에 지장이 안 가는 한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하자고 생각하게 되었다. 나는 종종 주변 일본인 친구들에게 일본어를 정말 잘한다는 칭찬을 듣는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호의를 보이기 위한 멘트라고 생각했고 비즈니스적인 멘트라고 여겼었다. 그도 그럴게 스스로 일본어가 아직 얼마나 부족한지 잘 알고 있고, 한자를 제대로 읽지 못하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일본 가게에서 일본인과 일하는 것은 무리일지도 모른다고 판단하여, 굳이 한인타운의 한국인 식당을 찾아갔다.

뭐 한창 대기업 면접보고 다니는 시기였는데 아르바이트 면접은 식은 죽 먹기가 아닌가. 그래서 금방 일자리를 구했다. 내가 해야 할 일은 주방 일이었는데, 살면서 아르바이트를 꽤 해봤지만 주방은 해본 적이 없어서 걱정이 되었지만 몸을 쓰는 일이라서 자신은 있었다. 그렇게 투입되어서 일을 시작했는데 특이한 점이 있었다. 한인타운의 한식당임에도 불구하고 일하는 사람이 나를 제외하고 모두 일본인이었던 것. 그렇기 때문에 일본 가게에서 일하는 것과 다를 게 없었다. 일을 하면서 내가 놀랐던 점은 정말로 일본어 만으로 일이 할만하다는 것이었다! 사실 일은 꽤 힘들었지만 개인적으로는 정말 마음에 들었었다. 밥도 공짜로 얻어먹을 수 있었고 모두 한국을 좋아하는 아르바이트생들이었다. 그래서 그곳에서 계속 일하고 싶었다.

그러다가 사건이 발생했는데, 유학생이 일본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려면 목적(학업) 외 활동 자격을 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친구로부터 전해들은 것이었다. 보통 공항에서 재류카드 뒤에 1주에 28시간까지 일할 수 있다는 도장을 찍어준다는데, 어째서인지 나는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 도장 없이 유학생 신분으로 아르바이트를 한다는 것은 불법이었고 당연히 나중에 아르바이트비를 법적으로 보호받을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일하고 있는 한식당의 관리자에게 문의했다 (관리자만큼은 한국인 아줌마였다). 처음에 그 아줌마는 나에게 문제 될 것이 없다고 괜찮다고 안심시켜 주었다. 하지만 나는 계속해서 불법이라는 게 마음에 걸렸고 정말 그 아줌마가 제대로 알고 있는 건지 의심스러웠다. 왜냐하면, 공문서를 아줌마에게 공유해서 보여주었고, 그 문서를 제대로 읽고 이해했다면 문제 될 게 없다는 말이 나올 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누가봐도 명백한 불법상황에 내가 처해있었다. 

아줌마의 대답이 미심쩍었던 나는 학교 행정실에 가서 확인을 해봤다. 아니나 다를까 역시나 불법이었고 그 도장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들었다. 나는 아줌마에게 다시 얘기했다. 하지만 아줌마는 본인이 지금 일본에서 오랫동안 살고 있고 그 누구보다 현지 상황을 잘 알고 있다는 꼰대스러운 대답을 하기 시작했다 (어이없어하며 날리는 비웃음은 덤). 굳이 그 상황에서 공문서보다 자기의 고집을 믿으라고 주장하고 있는 아줌마가 이해가 안 됐다. 아줌마는 논리적으로 설명하려 하지 않았고 나는 벽에다가 대고 말하는 것 같았다 (이때 처음으로 경험했다 꼰대의 무시무시함을). 나는 벌써 취직도 결정되었기 때문에 무사히 졸업하면 내년부터 일을 하게 되어있는 상황인데, 굳이 불법이라는 리스크까지 감수하면서 일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사실 가게가 꽤나 마음에 들었던 나는 도장받는 데 하루면 충분하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며칠만 기다려달라고 부탁하고 다시 일을 시작할 생각이었으나, 그 한국인 아줌마의 고집과 유학생을 진심으로 생각하고 있지 않다는 점을 느끼고는 그냥 추노 해버렸다. 

어차피 그동안 일한 아르바이트비를 받으려면 또 그 아줌마와 마주쳐야 하고 서로 얼굴을 붉히는 상황까지 갈지도 모르는데다가 나는 그당시 불법으로 일한 것으로 되어있기에 그 아줌마가 안준다고 잡아떼면 법적으로도 아르바이트비를 받을 수 없는 상황이라 그냥 알바비를 포기했다. 그리고 아르바이트하는 동안 쓰려고 가게 사물함에 넣어두었던 내 바지와 친구에게 받은 신발도 가지러 가지 않았다 (ㅅㅂ..).

물론 이런 경험들로 외국에 있는 한국인은 모두 조심해야 한다고 일반화를 할 수는 없으나, 외국에 있는 한국인을 조심해서 나쁠 건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 나야 원래 따지기를 좋아하고 납득이 안되면 이해를 못하는 성격이기에 결국엔 잘 걸러내지만 아직 사회경험이 부족하고 다른 사람을 잘 믿는 순진한 성격의 한국인 학생들이라면 이런 아줌마에게 속을지도 모를 일이다. 여담으로 나는 그 뒤로 곧바로 새로운 아르바이트를 구했고 평범하게 일본 슈퍼마켓에서 일하고 있다. 게다가 걸어서 출퇴근 가능하고 일도 힘들지 않으니 조건은 더 좋다. 그래도 한식당에서 아르바이트해본 덕에 내 일본어로 일본 가게에서 일하는 데 무리가 없다는 것은 증명된 셈이니 어떻게 보면 좋은 결과가 됐는지도 모른다. 

그러니 외국에 나올 한국인들은 동포라는 그럴듯한 포장지 외에는 실제로 아무런 득이 되지 않는 인간관계로 인해 부조리한 일을 당하지 않도록 주의하길 바란다. 결국 믿을 건 자기 자신뿐이고 나중에 책임을 지는 것도 자기 자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