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벌어진 일이다.
꽤 친하게 지내던 친구 녀석이 있었는데 최근에 개인적으로 크게 실망하여 모든 관련 계정을 차단하고 마주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처음에는 꽤 얘기도 잘 통하고 진지하고 생각이 깊은 친구라고 생각했는데 계속 얘기하고 그 사람의 본성을 알게 될수록 정말 위선적인 사람이구나 라는 느낌이 들어 정이 뚝뚝 떨어졌다.
물론 이 세상에 위선이나 가식을 부려보지 않은 사람이 누가 있겠냐마는, 중요한 건 과거에 그런 잘못을 저질렀더라도 지금 그런 버릇을 고쳤다면 문제될 게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그 사람이 가식적이냐를 판단하는 기준은 과거의 잘못이 아닌, 현재의 그 사람의 성향을 보고 판단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한다.
이 친구와 벌어진 내용을 대충 요약해보자면, 평소 이친구와 나는 연애관이 많이 달랐다. 나는 기본적으로 남자는 여자를, 여자는 남자를 좋아한다고 생각하고 그렇기 때문에 남자가 여자를 만나고 싶어하는 것과 여자가 남자를 만나고 싶어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해왔다. 그래서 난 평소에도 여러 사람과 만나보고 어느정도 교류를 해봐야 그 사람에 대해 잘 알수 있고 그러한 판단을 토대로 앞으로 이 사람과 계속 진지하게 만날 수 있는가가 결정된다고 믿고 있다. 즉, 처음부터 결혼이나 진지한 관계를 전제로 만나는 연애보다는 가볍게 시작해서 점점 깊은 관계를 이루어 나가는 게 나의 연애관이라고 할 수 있겠다. 상대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는 상태에서 처음부터 이것저것 진지하게 꼼꼼하게 따지는 친구들을 보면 저렇게해서 연애가 정말 시작 될 수 있는지 의심스럽다.
내 친구는 그런 성격이었다. 본인의 주장에 따르면 본인은 여자에게 먼저 대시해 본 적도 없고 항상 여자 쪽에서 고백을 해왔기에 가벼운 만남 같은 것에 부정적인 입장이라고 주장해왔었다. 바람은 물론 여자친구가 있는 상태에서 다른 여자에게 관심을 가지거나 여자친구를 구하기 위해 만남 어플을 사용하는 것 등등이 그 친구에게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 물론 난 그런 점을 존중했고 진지하고 신중한 친구라고 생각했었다. 그 친구가 보기에 나의 연애관은 충분히 가벼워 보일 수 있고 자기와 맞지 않기 때문에 편견을 가질 수 있을터. 세상엔 다양한 사람이 있고 사람마다 가치관이 다르기에 그 친구가 연애관을 가지고 태클을 걸거나 잔소리를 해도 딱히 감정상하는 일 없이 받아들였었다.
그런데 최근 충격적인 사건 두 가지를 듣게 되었다.
첫 번째는 이 친구가 같은 학교에 재학중인 한국인 여자애에게 관심이 있어서 고백했다가 차였다는 걸 알고는 있었는데, 그 여자애에게 사건의 모든 것을 전해듣고 충격을 받았다. 자칭 항상 고백을 여자쪽에서 먼저 받기만 해봤다는 그 친구는 여자애에게 자존심이고 뭐고 구질구질할 정도로 들이댔었다. 자기 방에 같이 가자는 둥, 나는 정말 안되냐는 둥 어지간히도 귀찮게 굴었었나 보다. 그 친구는 꼴에 자존심은 있고 부끄러운 건 알았는지 내 앞에서는 그냥 쿨한 모습만 얘기해줬었다. 뭐 남자로서 그렇게 매달렸다가 차이는게 부끄러운 일일 수도 있으니 그 정도로 전해듣는 건 이해한다만, 평소 자신이 강조해왔던 본인의 모습과 꽤 다른 행동에 꽤나 충격을 받았다. 당연히 그 한국인 여자애는 그 사건 이후로 고백한 친구를 굉장히 극혐했고 같이 있는 것 조차 싫어하게 되었지만 우리는 그것도 모른체 친구로 부터 그냥 쿨하게 끝났다는 말만 전해듣고는 그 여자애에 대한 배려없이 계속해서 다같이 만나는 자리를 만들어왔다. 아마 여자애는 계속 불편하고 오기 싫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이 경우 가장 이기적이고 나쁜 놈은 당연히 고백을 해서 불편한 관계를 만들어놓고 겉으로는 멀쩡한 척 했던 그 친구다.
그렇게 상대방을 불편하게 만들고 구질구질한 사건이 있었으면 서로 거리를 두고 조심하는 게 배려일 터. 어떻게 보면 우리를 이용해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사건을 무마시키고 뻘쭘해진 여자 애와의 관계를 회복하려고 했다고 생각된다. 둘 사이의 문제를, 본인이 똥을 싸질러서 망쳐놓은 관계를 다른 식으로 친구들에게 말해서 계속 다같이 만나는 자리를 유도하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행동해왔다는 게 정말 역겨웠다.
두 번째는 내가 직접적으로 연류된 사건이었다. 그 친구는 그 한국인 여자애에게 처절하게 차이고 꽤나 외로웠는지 타이 유학생과 썸을 타더니 금새 사귀게 되었다. 뭐 여기까지는 아무 문제 될 게 없었다. 외로워서 서로 상대방을 찾고 연애를 하는 건 당연한 일이기도 하고 둘 사이의 문제니 아무래도 좋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금씩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는데, 그 친구가 (지금부터는 그냥 철수라고 부르겠다) 현재 박사과정 중이라 연구를 열심히 해야하는데 타이 여자친구의 집착이랄까 본인에게 의지하는 성향이 강해서 본인의 시간을 자꾸 빼앗겨 연구에 지장이 생긴다는 게 문제의 이유였다. 철수는 종종 그 문제로 나에게 상담을 요청했고 나는 당연히 앞으로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 연애보다는 박사과정의 중요성을 더 중요하게 여겼기 때문에 정말 그 여자친구가 너의 연구에 지장을 준다면 헤어지는 편이 낫지 않겠냐고 조언을 해 주었다. 하지만 그 친구는 헤어지고 싶어하면서도 쉽게 헤어지지는 못했는데, 평소 들었던 얘기와 그 친구의 행동패턴, 그리고 비겁한 성격을 생각해보면 왜 그러는지 답이 꽤 명확하게 보였다.
1. 철수는 항상 타이 여자친구 방에서 밥을 얻어먹었다. 여자친구가 요리를 해주었고 그로인해 철수는 식비를 많이 아낄 수 있었고 식사의 수고를 줄일 수 있었다. 뭐 요리 재료값은 반반 씩 계산한다고 하지만 그거야 너무나 당연한거고, 그 애가 본인을 위해 들이는 수고와 시간은 ?
2. 철수는 헤어지고 싶다고 하는 주제에 그 여자친구와 꾸준하게 성관계를 가졌다. 여기서부터 나는 조금씩 철수의 연애관에 의구심이 들기 시작했다. 내가 그동안 들었던 철수의 연애관과는 꽤나 행동들이 달랐기 때문이다. 나는 이 때부터 철수보다 그 여자친구가 더 불쌍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철수는 그동안 본인의 연애관과 맞지 않는 남자애들을 쓰레기라고 우스갯소리로 종종 부르곤 했다. 그런데 철수가 하는 짓이 누가봐도 그 "쓰레기"짓 이었다.
나는 원래 솔직한 성격이기 때문에 당연히 이 사건에 대해 굉장히 잔소리를 했다. 그럴거면 그냥 헤어져라 답은 명확한데 뭐하는 거냐 그럴수록 그 여자애만 불쌍하다 등등 정말로 느끼고 있는 점을 그대로 얘기해줬다. 철수는 내 앞에서는 알아듣는 것처럼 반응하더니 끝까지 행동을 바꾸지 않았다. 그러던 중 결정적인 사건이 터졌다. 여기서 다른 한국인 친구 (맹구라고 하겠다)가 개입되는데, 맹구가 여자대학교의 축제에 철수와 같이 가더니 여자친구가 있는 철수에게 느닷없이 일본인 여자애의 번호를 따서 전해줬다 (실화다). 이유를 물어보니 철수의 일본어 실력에 도움을 주기 위해 일본인과 사귀는 게 좋겠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나 뭐라나. 오지랖도 이런 오지랖이 있나..(철수가 3살 더 형인데 그 둘의 관계를 지켜보면 항상 3살 어린 맹구가 숟가락으로 떠먹여주는 느낌이 없지않아 있다). 이때부터 나는 이 두사람의 정신세계가 이해가 안되기 시작했고 정내미가 뚝뚝 떨어지기 시작했다. 정신을 못차리는 철수는 타이 여자친구가 있는 와중에 계속해서 번호를 알게된 여자애와 연락을 했지만 결국 그 여자애와는 잘 안된 듯 보였다. (철수가 외국어를 잘 못하기 때문에 언어장벽을 극복하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여기서 막장요소가 하나 더 추가 되는데, 평소 연구에 몰두하고 싶고 연애때문에 집중을 못하게 되는 것과 자신의 연구시간이 줄어드는 게 싫다고 징징대던 철수가 스스로 그 여자대학교 근처 카페에 가더니 새로운 여자의 번호를 따고 온것이다. 이 때부터 나는 이성의 끈을 놓치기 시작했고 철수에게 극딜을 넣었다. 지금 네가 하는짓이 뭔짓인지 아느냐 니가 말하던 것과 전혀 다른 그런 행동들을 왜 하고 있느냐 등등 신랄하게 면전에서 비판했다. 철수는 뻘쭘해했고 반박하지 못했다. 당연하지 자기가 한 짓이 누가봐도 이해하기 힘든 행동인데. 나는 철수의 위선과 가식적인 행동들에 점점 역겨움을 느끼기 시작했고 덤으로 이런 막장사건의 불씨를 제공한 맹구에게도 정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니들이 여자애들 앞에서 그렇게 내숭부리면서 강조하던 올바른 연애관은 어떻게 된거니? 그 둘은 신기하게도 여자가 한 명이라도 있으면 마치 다른 사람인 양 말투와 가치관을 바꾼다. 나는 그때부터 대놓고 철수의 연애관과 모순적인 행동을 비판하기 시작했다. 나의 갈굼이 먹힌건지 아니면 번호를 딴 새로운 일본인 여자애와 잘 되어가고 있었던 건지 철수는 타이 여자친구와 드디어 헤어졌다.
철수는 기숙사 내 바로 옆 방에서 사는데 타이 여자친구와 헤어지고 난 순간부터 철수의 방에 맹구가 자주 오기 시작했다. 기숙사 건물이 오래되고 바로 옆방이라 방음이 안좋아서 대충 무슨 얘기 하는지 들렸는데 대부분 여자 얘기였다. 아마 철수는 평소 자기 주장대로 여자에게 고백만 받아와서 그런건지 (본인피셜) 여자애에게 자기 쪽에서 먼저 외국어로 연락하는게 어려운 듯 했다. 맹구는 철수와 새로운 여자애의 대화를 읽고 뭐라고 답장하면 좋을지 철수에게 알려줬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여기서 맹구가 동생이고 철수가 형이다). 정말 수준이 너무 낮아서 이게 대학원에 다니는 석사와 박사의 레벨일 수 있는지 의심스러웠다. 그냥 인간적으로 너무 실망했다.
여기서 한가지 확실히 강조하고 싶은건, 내가 실망한 포인트는 철수가 여자를 만났기 때문이 아니다. 평소 본인이 주장하던 언행과 매우 다른 짓거리를 하고 다니기 때문에 그 이중성, 위선, 가식에 진절머리가 났다. 그 뒤로는 철수가 인간 이하로 보이기 시작했다. 이런 인격으로, 이런 정신머리로 장래에 본인이 얘기하던 교수가 되고싶다던 꿈을 이룰 수 있을지 모르겠다.
아무튼 그 뒤로 나는 취업활동 때문에 바빠져서 그 둘과의 교류가 뜸해졌는데, 얼마 전 철수와 같은 연구실인 외국인 친구로부터 철수가 그 여자애와 사귀게 되었다는 얘기를 우연히 전해들었다. (철수와 맹구는 내가 신랄하게 비판할게 불보듯 뻔하다고 생각했는지 나에게는 그 사실을 숨겼다.) 나는 철수와 맹구, 그리고 미안하지만 말도 잘 안통하는 철수같은 남자애와 사귀기로 한 그 여자애의 수준이 너무나도 기가찼다. 안봐도 어떤 여자애와 사귀고 있을지 뻔히 보인다. 철수는 기생충적인 본성을 고치지 못했는지 사귀고나서부터는 금요일만 되면 주말이 끝나기 전까지 자기방에 돌아오지 않는다.
심지어 새로운 여자친구가 생겼다는 걸 극비로 하고 있으며, 본인을 제외한 딱 2명에게만 진실을 말한 듯 했다 (당연히 맹구 포함). 아마 타이 여자친구와 사귀는 동안 다른 여자와 연락하고 헤어지자마자 환승했다는 사실이 알려져서 본인 이미지가 나쁘게 되는 게 두려운가보다. 철수는 지금 이 순간도 나와 다른 친구들이 진실을 알아챘다는 사실을 모르고있다. 나중에 다 들통났다는 걸 알았을 때의 표정이 궁금하다.
내가 왜 한 사람의 존재만으로 이렇게 역겨움을 느끼고 스트레스를 받아야 하는지 모르겠다. 철수라는 존재를 의식하지 않게끔 되려고 매우 노력하고 있다. 철수는 평소 가식과 위선이 훌륭한 친구라서 그런지 연구실의 다른 이들에게는 지금도 성실하고 언어장벽을 극복하고 새로운 여자친구를 만든 대단한 사람으로 인식되고 있는 듯 하다. 물론 연구는 잘 되고있지 않은 듯 하다. 일본에 온 지 1년이 다되어가는데 여태까지 뭘 한걸까..?
본인이 떳떳하지 못하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에, 여자친구가 생겼다는 경사조차 남들에게 숨기고 다닐정도면 떳떳하지 못한 짓을 하지를 말던가. 아니면 본인이 쓰레기라는 것을 인정하고 남들에게 본인의 진짜 모습을 보이던가. 본인이 쓰레기 짓은 하면서 쓰레기로 보이고 싶어하지 않는 그 이기심. 그런 미성숙한 태도와 나이를 헛먹음을 보여주는 어리숙한 행동들. 최근까지도 본인이 여자친구가 없다고 열심히 늘어놓는 거짓말과 거짓말들이 쌓여 결국 앞 뒤가 안맞는 핑계들.
하루빨리 졸업해서 철수와 다시는 마주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내가 이렇게까지 사람을 한심하게 생각했던 적이 있었던가. 왜 이렇게 비겁하고 이기적인 놈들이 존재하는 걸까.
이럴 때 마다 떠오르는 격언 한마디,
끼리끼리 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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